언젠가 꼭 해보고 싶은 것들이 있다.
그중 하나였던 마라톤을 어제 완주했다.
🎧 오늘의 추천곡
https://youtu.be/GxldQ9eX2wo?si=u5BvKkgWv0uofiPW
1. 내가 왜..
하필 춘천마라톤이라 새벽 5:30부터 일어나 6시 버스를 타고 춘천으로 출발했다.
새벽부터 셔틀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길게 줄 서있었다.
내가 왜.. 왜 이걸 신청했을까..
요즘 너무 바빠서 마라톤 연습할 시간도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도 없었다.
그렇게 마라톤 전날 버스 예매 여부와 시간을 확인하고 춘천으로 이동하는 길에 안내책자를 펼쳤다.
배번표 뒤에 버스티켓이 있었고, 핸드폰 배터리는 18%였으며 가는 길에 텀블러에서 커피가 흘러 가방이 다 젖었다.
8시쯤에 춘천에 도착했고, 9시에 출발이라기에 급하게 카페에서 핸드폰 충전을 하고 만원짜리 모자 하나를 사서 급하게 짐을 보관했는데 10km는 9:30에 출발 지점으로 이동한다더라,,😅
내가 왜.. 내가 왜 마라톤을 신청했을까..
생각을 비우기 위해 단순히 집중할 대상을 찾은 것이었다. 그러니까 러닝 자체에 대한 흥미는 크게 없었기에 헛웃음이 나기도 했다. ㅋㅋ
그치만 어쩌겠어. 신청했는데.. 지난 월요일엔 연습하다가 발가락을 다쳤는데 토요일에 기적적으로 다 나았다.
가야지.
끝까지 해봐야지!
마라톤을 신청하면서 목표는 완주였고 가볍게 뛰어도 완주할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출발선에 서니 조금 긴장이 됐다.
혼자 뛰는 사람들이 더러 있었는데 크루가 있지만 혼자 서게 된 경우거나 이어폰을 끼고 선수 느낌을 풍기는 사람이 많았다.
출발 직전 옆에 이어폰도 안 끼고 복장도 평범하니 진짜 혼자 온 것 같은 분이 있었고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파이팅을 외쳤다. (물론 마음속으로만^^)
그렇게 출발한 시간은 10:13
일어난지는 4시간 47분째.. 대략 8시에 춘천에 도착해서 2시간 동안 어리둥절하다가 드디어 출발이다.
2. 인생은 마라톤이 아니다
https://youtu.be/kaKQHsUM3Po?si=xaagy4L6IqWmGhik
마라톤을 소재로한 유명한 일본 광고가 있다.
결승점은 인간의 수만큼 존재한다며 내딛는 선수들
고민하고 고민하면서 끝까지 달려가는 것
이 말이 참 좋다.
3. 마라톤이어도 좋다
현실에서의 마라톤 출전자는 코스를 이탈하면 기록이 측정되지 않는다.
코스를 이탈하지 않고 완주가 목표다.
시작과 동시에 굶주린 좀비처럼 사람들이 와다다 달려 나갔고, 나도 모르게 그들을 따라 뛰었는데 뒤에서 한마디가 들렸다.
"나 기억났어. 여기서 무리하면 안 돼."
바로 정신이 들었다.
10km 짧지 않은 거리를 달리기 위해서는 초반에 전력질주를 해서는 안된다. 7~8km 때부터 심장이 터질 것 같은 경험을 할 수 있기에 적당한 페이스를 유지해야 한다.
이미 4분대로 오버페이스된 상태..
1km를 지날 때마다 애플워치를 확인하며 천천히 내 페이스를 되찾아갔다.
오르막길이 많아서 생각보다 힘들었는데 "멈추지만 말자" 오로지 이 생각뿐이었다.
그 후에 마주하는 내리막길에서는 기분이 정말 좋았다. 오르막길에서의 힘들었던 순간을 보상받는 것 같았다.
4km부터는 지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어제 너무 많이 먹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호흡에 집중했다. 사람들의 티셔츠 문구를 구경하며 달렸다.
N km 팻말이 보일 때마다 애플워치로 페이스를 확인했다. 중간에 확인하면 페이스 조정에 신경 쓰일 것 같아 그전에는 확인하고 싶어도 참고 달렸다. 오르막길에서는 페이스가 느려졌는데 오르막길임을 알면서도 스스로에게 잠시 서운했다.. 😅
마지막 1km가 남았을 때도 결승점이 보일 때까지 페이스를 유지했고, 결승점이 보일 때는 페이스를 올려서 달렸다.
그렇게 완주한 인생 첫 10km 마라톤 결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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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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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족한다. :)
심지어 이전 페이스보다 빠른 기록이다! 😙
마라톤에서 느낀 바는 같은 길을 달려가더라도 비교하지 않고 자신의 속도로 가는 것이다.
어쩌면 내가 추구하는 삶의 방식을 투영한 것일지도 모른다.
'나만의' 길을 가려면 개척해나가야 할 것 같은데, 유난하게 목표하는 것이 없는 지금 현실을 외면하면서까지 나만의 길을 개척하고 싶지 않다.
그렇다고 같은 코스를 달라면서 누군가와 비교하거나 경쟁하고 싶지 않다.
경쟁 사회라는 말이 있지만 각자의 장점이 있고 자신이 편안하게 느끼는 순간이 다르기 때문에 애초에 경쟁할 수 없는 사회라고 믿고 싶다.
고민하고 고민하면서 끝까지 달려가는 것
그래서 이 말이 좋다.
아무 생각 없이 달리다 보면 나도 모르게 그들과 비교하고 경쟁하게 된다.
하지만 고민하고 고민하면서 달려 나가다 보면 비교하거나 경쟁하지 않게 된다.
고민하고 고민하다 보면 그만큼 자신을 믿는 힘이 생기기 때문이다.
작게는 왜 이 옷을 샀는지 얼마나 합리적인지 말할 수 있다.
왜 직접 요리를 하고 위스키를 마시는지, 왜 영상 편집을 하는지, 왜 책을 읽고 글을 쓰는지, 왜 개발자라는 직업을 선택했는지 왜 이 회사에 남아있고 싶은지, 나아가 자신이 만나는 사람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말할 수 있다.
AI가 수많은 직업을 대체하는 시대에 두 다리로 달릴 수 있고 사색할 수 있는 인간으로 태어난 것이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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