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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인문

[스토너] 고독하게 견디면서 살아봄

친구들과의 세 번째 독서 모임 책으로 지정된 소설이다.

여러 인물이 등장했던 '시선으로부터'와 달리 '스토너'는 윌리엄 스토너 중심의 내용으로 또 다른 소설의 매력을 알게 되었다.

소설의 매력은 나와는 다른 성향의 사람의 삶을 살아볼 수 있고 이 경험으로 주변 사람들을 더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윌리엄 스토너는 전반적으로 고독하며 쓸쓸해보이기도 하지만 분명한 자신의 빛을 가진 사람이다.

그가 대학에 입학하고 교수가 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사랑을 하는 모습을 보며 끊임없이 스토너만의 빛이 무엇인지, 그를 빛나게 하는 존재는 무엇인지 관심을 기울이며 읽었다.

 

스토너, 존 윌리엄스

 

아이는 아버지의 기분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정확히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하여튼 아버지의 말을 듣고 웃음을 터뜨렸다. 이내 두 사람은 함께 정신없이 웃고 있었다. 마치 둘 다 어린아이인 것 같았다. (p170)

스토너는 부인인 이디스보다 딸인 그레이스와 함께할 때 더 행복해 보인다.

그런 모습이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연민이 느껴졌다.

중간에 잠시 캐서린 드리스콜과 사랑에 빠지긴 하지만 스토너 자신을 이해해주는 연인과 결혼 생활을 시작했더라면 더 행복했을 텐데.

 

스토너와 이디스는 육아 방식도 달랐다.

스토너는 그레이스가 진심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파악하려고 하는 반면에 이디스는 본인이 원하는 틀에 스토너와 그레이스를 맞추려는 것처럼 보였다.

 

1. sonnet 73

그대 내게서 계절을 보리

추위에 떠는 나뭇가지에

노란 이파리들이 몇 잎 또는 하나도 없는 계절
얼마 전 예쁜 새들이 노래했으나 살풍경한 폐허가 된 성가대석을
내게서 그대 그날의 황혼을 보리
석양이 서쪽에서 희미해졌을 때처럼
머지않아 암흑의 밤이 가져갈 황혼
모든 것을 안식에 봉인하는 죽음의 두 번째 자아
그 암흑의 밤이 닥쳐올 황혼을.
내게서 그대 그렇게 타는 불꽃의 빛을 보리.
양분이 되었던 것과 함께 소진되어
반드시 목숨을 다해야 할 죽음의 침상처럼
젊음이 타고 남은 재 위에 놓인 불꽃
그대 이것을 알아차리면 그대의 사랑이 더욱 강해져
머지않아 떠나야 하는 것을 잘 사랑하리

(p21)

 

대학은 우리르 위해 존재하는 걸세. 세상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학생들이나 이타적인 지식추구나 그밖에 사람들이 말하는 이런저런 이유를 위해서가 아니야. (p47)

 

그녀는 학교 친구들과도 친하게 지내지 못했고, 집에도 터놓고 이야기할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자꾸만 안으로 움츠러들었다. 그 내면의 사적인 공간으로 지금 윌리엄 스토너가 침범해 들어왔다. (p80)

 

그는 길고 긴 낮과 밤을 방에서 혼자 보내며 자신의 일그러진 몸이 강요하는 한계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책을 읽다가 점차 자유로움을 느끼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가 이 자유의 본질을 이해하게 됨에 따라 그가 느끼는 자유로움도 더욱 강렬해졌다. (p139)

 

그가 이렇게 가구를 수리해서 서재에 배치하는 동안 서서히 모양을 다듬고 있던 것은 바로 그 자신이었다. 그가 질서 있는 모습으로 정리하던 것도, 현실 속에 실현하고 있는 것도 그 자신이었다. (p143)

 

두 사람은 그날 거의 하루 내내 작은 트리 앞에 앉아서 트리 장식물에서 반짝이는 불빛들과 암녹색 트리 속에서 숨은 불꽃처럼 빛나는 반짝이 장식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나눴다. (p158)

 

문학, 언어, 정밀하고 기묘하며 뜻밖의 조합을 이룬 글 속에서 그 무엇보다 검고 그 무엇보다 차가운 글자를 통해 저절로 모습을 드러내는 마음과 정신의 신비, 이 모든 것에 대한 사랑을 그는 마치 위험하고 부정한 것을 숨기듯 숨겨왔지만, 이제는 드러내기 시작했다. (p159)

 

자신이 책에 적은 내용을 진심으로 받아들이는 사람, 인간으로서 그가 지닌 어리석음이나 약점이나 무능력과는 별로 상관이 없는 예술의 위엄을 얻은 사람. 그가 이런 깨달음을 입으로 말할 수는 없었지만, 일단 깨달음을 얻은 뒤에는 사람이 달라졌기 때문에 그것의 존재를 누구나 알아볼 수 있었다. (p160)

 

아이는 아버지의 기분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정확히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하여튼 아버지의 말을 듣고 웃음을 터뜨렸다. 이내 두 사람은 함께 정신없이 웃고 있었다. 마치 둘 다 어린아이인 것 같았다. (p170)

 

사랑과 염려라는 가면을 쓴 전략이었으므로, 그는 그 앞에서 무기력했다. (p172)

 

"좀 너그러워져요. 아이를 너무 몰아붙이지 마시오." (p176)

 

그의 눈빛에는 차갑고 계산적이고 경계를 게을리하지 않는 뭔가가 있었다. 그것은 쓸데없이 무모하면서도 필사적으로 느껴질 만큼 신중했다. (p200)

 

생각은 그가 들고 있는 책에서 멀어져 방황했고, 그가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는 시간도 점점 늘어났다. 그의 의지력이 모든 힘을 잃어버리는 것 같기도 했다. 가끔은 자신이 식물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는 자신을 찔러 활기를 되찾아줄 뭔가를 갈망했다. 고통이라도 좋았다. (p251)

 

자신의 생이 살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지, 과연 그랬던 적이 있기는 한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자기도 모르게 떠오르곤 했다. (중략) 그는 보잘것없지만 지금까지 자신이 배운 것들 덕분에 이런 지식을 얻게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 우울하고 역설적인 기쁨을 느꼈다. 결국은 모든 것이, 심지어 그에게 이런 지식을 알려준 배움까지도 무익하고 공허하며, 궁극적으로는 배움으로도 변하지 않는 무로 졸아드는 것 같다는 생각도 마찬가지였다. (p252)

 

그 죽음 같은 풍경이 그를 잡아당기고, 그의 의식을 빨아들이는 것 같았다. (p253)

 

이제 마흔두 살인 그의 앞날에는 즐겁게 여길 만한 것이 전혀 보이지 않았고, 뒤를 돌아보아도 굳이 기억하고 싶은 것이 별로 없었다. (p254)

 

"그렇게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살다 보면 그런 일도 있는 법이죠. 세월이 흐르면 다 잘 풀릴 겁니다.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니에요." 이 말을 하고 나자 갑자기 그것이 정말로 중요하지 않은 일이 되었다. 순간적으로 자기 말에 담긴 진실을 느낀 그는 몇 달 만에 처음으로 자신을 무겁게 짓누르던 절망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그는 그동안 자신의 절망이 그토록 무거웠다는 것조차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p264)

 

첫사랑이 곧 마지막 사랑은 아니며, 사랑은 종착역이 아니라 사람들이 서로 알아가는 과정이라는 것. 두 사람 모두 수줍어하면서 천천히 조심스럽게 서로를 알아갔다. 가까워졌다가 멀어지기도 하고, 서로에게 손을 내밀었다가 물러나기도 했다. 두 사람 모두 상대방에게 억지로 자신을 강요하고 싶지 않았다. (p272)

 

두 사람의 사랑과 공부가 마치 하나의 과정인 것 같았다. (p279)

 

그저 우리 자신이 파괴될 것이라는 생각, 우리의 일이 망가질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지. (p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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